지금 한국인은 어떤 책을 읽고 있나
지금 한국인은 어떤 책을 읽고 있나
  • 독서신문
  • 승인 2009.10.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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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각 시대별로 사랑받은 도서를 묻다
[독서신문] 황정은 기자 = 한 사람을 진정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이와 마찬가지로 한 나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세대를 파악하기 원한다면 그들이 어떤 책을 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각 시대별로 접하는 책은 그 세대가 안고 있는 문제와 고민, 가치관을 드러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년대 대학생들은 커다란 검은 뿔테에 한쪽 옆구리에는 사상과 관련된 책을 끼고 다녔다. 그들에게 있어 시대적 이념을 논하는 것은 밥을 먹는 것보다 중대한 일이었으며 자신들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통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의 한국인은 과연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 편집자 주
 
조선후기, 1592년 임진왜란과 1894년 갑오경장까지의 3백 년간의 기간 동안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경제적으로 피폐해지면서 평민들은 자신의 현실을 각성하고 근대의식이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문학에 고스란히 반영되면서 현실주의적 경향이 강한 평민문학과 국문소설이 발달하기에 이른다.

『홍길동전』을 비롯해『구운몽』,『사씨남정기』등의 소설은 당대의 고민과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고 군담소설을 통해서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서얼과 중인, 서리들이 불우한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픈 소망을 노래하기도 했다.

근대를 지나 현대사에 접어들면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동일하게 나타났다. 일제치하, 해방기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당시 억압된 심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하기 시작했으며 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높이기도하고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자하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에 문학은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때는 문학의 형태로 그것이 드러났지만 현대에는 문학뿐만이 아닌 출판 전체적인 분야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 60년대, 인간의 근원을 고찰하다
 
1960년대 한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이승만 정권의 독재로 인한 혼란을 극복하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권을 반대하는 혁명이 발생한 후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작가들은 문학을 통해 한국에 새로운 역사를 세우는 것이 가능한지 묻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직접 몸으로 겪고 눈으로 본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것과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의미와 개인의 존재에 대해 고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출판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온오프라인 서점 반디앤루니스의 자료에 의하면 당시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는 인간적 욕망과 고뇌를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보여주는 김일엽의『청춘을 불사르고』, 자기세계를 뚫고 나오는 과정의 아픔을 그린『데미안』, 한국사회의 핵심적 문제를 파헤친 추리소설 조해일의『갈 수 없는 나라』등이 있다.

또한 삶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전혜린의 에세이집인『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여기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그녀가 높이 평가한 헤르만 헤세의『데미안』과 그녀의 작품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독자들의 손길을 잡아당겼다는 점이다.

외래사조가 유입된 시대를 배경으로 산 그녀는 당대의 엘리트 여성으로 당시 여성들이 접하기 힘든 교육을 거치면서 여학생들의 우상이자, 동경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천재이자 고독한 영혼’으로 대변되던 그녀는 당시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한 여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거기에 더해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녀의 선택은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묘한 마력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민주화에 대한 고민은 더 나아가 인간의 근원적인 삶에 대한 고뇌로 연장선을 그었고 인간의 실존을 고민하던 지식인 층 사이에서는 ‘인생이 허무하다’는 목소리가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60년대에 주목을 받은 책을 살펴보면 이 시대 독자들은 ‘인생을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것을 엿볼 수 있다.
 
 
■ 70년대,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여성들
 
1960년대에 발생한 혼란을 거치며 70년대에 들어선 한국사회는 점차 경제번영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기 시작했고 ‘잘 사는 것’에 대한 보다 깊은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점차 자본주의가 노골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작가들은 이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작품에 담은 것이다.

김용기의『이렇게 살 때가 아닌가』는 ‘두루 발전하고 고루 잘 살자’, ‘사람 위에 돈이 있어야 하나’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잘 사는 것에 대한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냈으며 윤태림은『한국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국인의 개성과 사고방식, 사회문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외래문명과 외래사조가 난무하게 유입되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해 상실하는 모습을 보이는 시대에 대한 우려가 느껴지는 그의 작품은, 그러나 시대의 기류에 편승하기 보다는 인문학적으로 심도 있게 한국인의 성향과 경향을 분석하고 있다.

뒤이어 70년대 후반에는 여성들이 꿈꾸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작품이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여성들이 찾는 사랑의 실상과 허상을 언급한 구혜영의『진아의 편지』, 고독하고 냉혹했던 한 여인의 사랑을 그려낸 최인호의『도시의 사냥꾼』, 인생과 사랑의 물음에 대한 에세이인안병욱의『사랑과 지혜 그리고 창조』등의 작품이 널리 회자되기에 이른다.

여기서『진아의 편지』를 집필한 구혜영은 당시 6.25의 전란이 가라앉은 후 서울수복과 함께 싹트기 시작한 전후문학에 가장 먼저 뛰어든 작가로 유명하다. 전쟁의 상흔이 거둬지면서 점차 분출되기 시작한 인간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다룬 그녀는 남녀 간의 애정을 개방적이지도, 너무 보수적이지도 않게 그리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당시 문단으로부터 값싼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여유를 갖고 작품을 집필하는 작가라는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 눈에 띄는 것은 70년대 한국사회의 노동현실을 해부한 조세희 선생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것이다. 이 소설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뇌가 문학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한다.
 
 
■ 1980년대, 사상과 여성문제를 묻다

70년대가 사랑에 대한 여성의 고민과 고뇌를 탐구하는 시기였다면 80년대는 여성문제에 대해 보다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유신과 독재 속에서 억압된 민중 심리는 1987년 5월 항쟁을 통해 분출되기 시작한다. 70년대에 태동하기 시작한 민중문학이 점차 극대화 되면서 노동자는 주체의식을 갖기 시작해 70년대 조세희 등이 보여준 지식인 시각과는 다르게 주체적인 시선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또한 사회주의 같은 사상서가 점차 대학생들 사이에서 읽히기 시작하고 사상과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며 진보적인 흐름으로 나아가는 본격적인 태동을 보여준다.

당시 많은 독자가 찾은 작품으로는 이문열의『젊은날의 초상』, 크리슈나무르티의『자기로부터의 혁명』, 조정래의『태백산맥』, 이태의『남부군』등의 작품이 있으며 대부분 민족사의 굴레를 담고 젊은 지성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책임을 알 수 있다.

반디앤루니스의 자료에 의하면 이 시대 이문열의 작품은 가히 선풍적인 열풍을 몰고 왔다고 할 수 있다.『사람의 아들』,『젊은날의 초상』,『레테의 연가』,『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등의 그의 작품은 젊은 지식인들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또한 여성문제를 본격적으로 들추기 시작한 책으로는 여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저자의 에세이집인 이시형의『자신 있게 사는 여성』, 여성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최초의 연애소설로 알려진 이문열의『레테의 연가』, 젊은 여성의 자기 수양을 위한 교양서『지적인 여성을 위하여』등 과거와는 달리 여성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주체의식을 가지도록 독려하며 고민하도록 이끄는 도서들이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 90년대, 점차 고개 드는 자기계발서
 
1990년대는 영상매체가 발달하고 인터넷의 인프라 구축이 서서히 가속도를 붙이면서 정보화 시대로 나아가는 시기였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랩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선보이며 이례 없는 큰 인기를 얻은 것에서 볼 수 있듯 ‘대중문화’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고 책보다는 tv로 사람들의 관심이 폭주한 시기다.

대중들이 선호하는 매체가 활자에서 영상으로 이동하는 것과 아울러 80년대부터 민주화로 가는 격동을 보인 것이 90년대에는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띠면서 대중 개개인의 선호를 반영하는 개인주의, 그리고 더욱 심화된 자본주의가 점차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다양한 문화선호와 기류를 미디어가 말초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시대 기류는 문학에도 반영돼 해당 시기에는 상업주의적 소설이 많이 등장했다. 문학작품이 많이 등장한 80년대에 비해 90년대는 영상매체로 인해 80년대만큼 ‘문학의 시대’를 만들지는 못했다.

90년대 나타난 새로운 경향은 자기계발서가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티븐 코비의『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공부가 가장 쉬웠어요』,『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3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등 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중들의 고민과 고충이 고스란히 출판시장을 통해 나타났다.

이를 통해 한국도 점차 경쟁사회의 길목에 본격적으로 접속하고 있다는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또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무라카미 하루키 등 외국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거대하게 밀려와 한국인의 정서와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당시 인기있는 작품으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개미』, 무라카미 하루키의『상실의 시대』, 리처드칼슨의『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등이 있다.
 
 
■ 2000년대,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위로 받고 싶은 사람들
 
90년대 자기계발서는 2000년대에 이르면서 본격적으로 가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점차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재테크 책과 주식관련 서적, 다른 사람의 성공담, 경매서적 등 주로 목돈을 마련하고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게 된다. 또한 영어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외국어 습득을 위한 기본서도 점차 두각을 나타냈다.

이 시기 독자들이 많이 찾은 작품으로는 돈과 투자와 경제의 원리를 들려주는 로버트 기요사키의『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영어 공부의 방법을 알려주는 정찬용의『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기업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일 잘하는 사람 일 못하는 사람』등이 있으며 현 세대들이 고민하는 주요 현안이 무엇인지 그대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독자들은 과거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에서 현재 ‘어떻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의 보다 실질적인 물음표를 제기하기에 이른다.

2008년, 경제불황이 닥치면서 경제․경영서는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대신 상승세를 나타낸 것이 일명 ‘위로의 문학’이었다.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가슴 애잔한 문학이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다. 무엇보다 눈물을 좀체 흘리지 않는 중견남성들로부터 눈물을 자아내고 출간 후 최단시간에 백만부를 돌파하면서 그야말로 국민문학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사람에게 입이 없었다면, 손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누가 뭐라 하든 그 사람이 읽는 책은 현재 그 사람의 상태를 알려준다. 내년이면 2000년 하고도 10년이 더 지난 상태가 된다. 지금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그들은 2010년대에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반디앤루니스가 대한출판문화협회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등에서 집계한 인기 도서를 조합해 작성한 각 시대별 베스트셀러를 참조했다.)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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