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언 애듀케이션
영화리뷰 - 언 애듀케이션
  • 손지영
  • 승인 2010.03.16 0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캐리 멀리건을 보는 즐거움
▲ 영화 '언 애듀케이션' 포스터 
[독서신문] 손지영 객원기자 = <언 애듀케이션>으로 캐리 멀리건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산드라 블록에게 오스카는 양보해야 했지만,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와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에 빛나는 그녀의 연기에 대한 궁금증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드디어 보게 된 <언 애듀케이션>에는 기대를 훨씬 웃도는 캐리 멀리건의 반짝반짝 빛나는, 예쁘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가득 차있다.

1961년 영국, 제니(캐리 멀리건)는 1등 신붓감이 되기 위한 자격으로 옥스퍼드에 가라는 아빠의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교육방식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녀의 모든 생활은 오직 옥스퍼드에 가기 위한 방편으로써만이 의미가 있다. 라틴어 에세이가 아닌 진짜 좋아하는 책을 읽고 프랑스 음악을 듣고 싶은,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불타는 사춘기 소녀 앞에 데이빗(피터 사스가드)이라는 매력적이고 지적인 연상의 남자가 나타난다. 그때부터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며 그 신기한 세상 속으로 한없이 이끌려간다.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이 이야기는 린 바버라는 영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의 실화에 기초하고 있다. 그녀가 첫 번째 남자친구에 관해 썼던 간략한 회고글에서 영감을 얻은, 역시나 <어바웃 어 보이>로 유명한 또 한 명의 영국인 소설가 닉 혼비의 각본에 의해 영화로 탄생됐다.
 
 
▲ 영화 '언 애듀케이션'의 한 장면     © 독서신문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너무나 빤한 이야기를 상쇄하는 가장 큰 장점은 배우 캐리 멀리건의 다채로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녀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최강 동안의 외모를 자랑하며 따분함을 느끼는 순수한 17세 소녀에서부터 일탈의 짜릿함에 도취된 도도하고 섹시한 여인을 거쳐 내적혼란을 겪는 예민한 사춘기 여학생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아무리 배우라지만 한 사람의 얼굴에서 저토록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집과 학교, 형식적인 첼로 연습과 라틴어 에세이만 존재하던 단조롭고 평면적인 삶은 데이빗의 출현으로 음악이 흐르는 화려하고 신나는 세상으로 변화한다. 모두가 한 번쯤 꿈꾸는, 아슬아슬한 위험이 동반된 일탈을 영화는 설렘과 낭만이 가득하게 그려낸다. 새로운 세상 앞에 황홀함과 경이감에 휩싸인 제니의 발그레한 표정과 손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수줍지만 과시적인 담배 연기는 관객들이 제니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며 잠시나마 일탈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낡은 사고방식으로 딸을 억압하던 아버지가 어수룩하게 속아 오히려 적극적인 지원군이 될 때마다 아버지를 속인다는 양심의 가책보다는 통쾌한 웃음과 해방감을 만들어낸다.
 
 
▲ 영화 '언 애듀케이션'의 한 장면     © 독서신문

 

총명하고 반듯하며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여자 아이가 이제 막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은 관객들을 흐뭇하고 만족스럽게 한다. 능구렁이 같은 한 남자에게 가족이 단체로 속았지만 비극적인 감상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캐리는 너무 늦기 전에 사태를 파악했고 얼른 정신을 차린다. 자신을 희생자로 미화하며 슬픈 감정에 끌려 다니지 않고 단호하고 확고하게 결정을 내린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똑 부러진 사람의 결단력을 보는 것은 언제나 통쾌하다. 현실의 유약한 우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일까. 제니의 짜릿한 일탈도 당당한 귀향도 모두 명쾌해서 속이 다 시원하다.

진정한 배움은 정녕 뼈아픈 실수와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가. 어쨌든 그 전까진 보이지 않았던 것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삶은 냉정하고 공짜가 없다.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고백하는 제니를 보며 그래서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론 차분해 보여도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이제 나이든 우리는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제니는 자신을 설득하는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이미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위악을 부리게 되고 언제나 그랬듯이 끝까지 가봐야만 알게 되는 것이다.
 
 
▲ 영화 '언 애듀케이션'의 한 장면     © 독서신문

 

똑똑한 여자 주인공이 잠시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가 얼른 정신을 차리는 이야기라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잘 생각해 보니 영국이 사랑하는 작가 제인 오스틴의 여러 소설들에서 무한 반복돼 온 테마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총명한 대사, 그리고 어리석고 우스꽝스런 부모님, 사기꾼 남자까지 마치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보는 듯 닮아있다.

그러고 보니 <언 애듀케이션>에의 쟁쟁한 조연들은 제인 오스틴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도 하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출현했거나 그녀의 역할을 했던 배우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적은 분량이지만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큰 신뢰감을 준다.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 올리비아 윌리엄스, 자꾸만 웃음이 나는 엠마 톰슨,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기에 더 반가웠던 샐리 호킨스까지 멋진 배우들을 숨은 그림 찾기 하는 재미가 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