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시리어스 맨
영화리뷰 - 시리어스 맨
  • 손지영
  • 승인 2010.03.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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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당할 것인가, 조롱할 것인가
 
 
▲ 영화 '시리어스 맨'의 한 장면     © 독서신문

 
 
[독서신문] 손지영 객원기자 = <시리어스 맨>은 코엔 형제의 작품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전적인 신뢰를 갖게 한다. <파고>에서 묵직한 감동을 그리고 <번 애프터 리딩>에서 제정신이 아닌 듯한 굉장한 유머감각을 보여준 코엔 형제가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그들의 새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게다가 <시리어스 맨>은 “receive with simplicity everything that happens to you." 라는 어느 랍비의 아주 절묘한 혜안이 담긴 글귀로 시작하니 더욱 기대가 커진다. 가슴을 짓누르는 문제나 고민 하나 없는 사람이 없을 터인데, 삶의 어려움에 대해 어떠한 해답을 내려줄지 그들의 빛나는 통찰력으로 삶의 비밀 한 조각 엿보길 바라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 영화 '시리어스 맨'의 포스터  
유대인 물리학 교수인 래리(마이클 스터버그)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그의 아내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난 것도 모자라 이혼을 강요하고, 학생 하나는 시험도 못 본 주제에 성적을 올려달라며 뇌물을 주고는 되레 협박을 하는 중이다. 아들은 tv 안테나를 고쳐달라고 시도 떼도 없이 전화를 하고, 딸은 머리감기에 집착하느라 아버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집에 얹혀사는 동생마저 말썽을 보탠다. 옆집 남자는 자꾸만 자신의 집 마당을 침범하고 위압적인 눈빛을 보내온다. 감당하지 못할 문제들로 인내의 한계를 넘은 래리는 랍비들을 찾아 가고 현명한 조언을 넘어 속이 확 뚫릴 만큼 명쾌한 신의 대답을 듣고자 한다.

<시리어스 맨>은 조금 기이하게 시작한다. 무섭고 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유대인과 악령에 관한 짤막한 프롤로그 이후 jefferson airplane의 노래와 함께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서로 다른 공간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며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며 강하게 몰입시킨다. 평범하지 않은 카메라 앵글과 주인공의 혼란스런 표정, 미스터리한 느낌의 음악은 비현실적이고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영화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스펜스가 서서히 차오르는 가운데 영화는 매 순간 도저히 웃지 않고는 못 배기는 유머들로 꽉 들어차있다. 단순한 장난부터 조롱과 풍자, 희화화와 아이러니, 모순과 부조리까지 전형적인 코엔 형제식 유머가 최고의 기량을 뽐내며 웃음의 불을 뿜는다.
 
 
▲ 영화 '시리어스 맨'의 한 장면     © 독서신문



<시리어스 맨>의 등장인물들은 우스꽝스럽고 어리석게 극대화돼있다. 마치 오목렌즈나 볼록렌즈를 그 위에 비춘 듯 과장되고 왜곡되어 있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요구와 어이없고 어처구니없는 행동들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은 폭소를 만들어내는데, 그 웃음의 근원은 현실과 다른 황당함에 있지 않고 사실 현실과 많이 닮아있다는 인식에 있다.

코엔 형제는 한 순간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매 장면마다 짓궂은 장난을 멈추지 않는다. 촘촘히 의도된 디테일은 웃음의 강도를 높이고 영화에 신뢰감을 갖게 한다. 미안하다며 얼른 담배를 권하는 의사라든지 커피 심부름을 하는 여자가 기침을 한다든지 하는 아주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에서도 예외 없이 웃음을 이끌어낸다.
 
 
▲ 영화 '시리어스 맨'의 한 장면     © 독서신문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한인 2세의 밋밋한 발음과 억양은 배꼽을 빠지게 하고, 싸이(래리의 아내와 바람 피는 남자)는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괴상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웃음이 막 비어져 나오는데 조금 과장돼 있긴 해도 억지스럽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는다. 정말이지 코엔 형제의 유머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듯하다.

<시리어스 맨>은 마치 래리가 꾸는 꿈처럼 인과관계가 치밀하지 않다. 심각한 상황은 번번이 반전되고, 엄숙하고 고상한 무언가는 기어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결국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했던 그것은 끝내 나오지 않거나 기대와 달리 독창적이지 않다. 코엔 형제는 관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지혜 한 조각을 손에 넣으려 하는 순간마다 여지없이 발로 뻥 차버린다. 마치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 영화를 만든 것인 양 처음부터 끝까지 뻥 차기는 계속 이어진다.
 
 
▲ 영화 '시리어스 맨'의 한 장면     © 독서신문



극중 한국인 학생과 래리와의 대화에서 나오는 ‘죽은 고양이’ 우화처럼 <시리어스 맨>은 하나의 우화일지도 모른다.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죽은 고양이’라는 우화에 빗대어 알기 쉽게 설명하듯 어쩌면 이 영화는 작은 인간의 외로운 사투를 보여주는 하나의 우화일지도 모른다. 래리의 삶은 저 위의 신이 또 다른 신을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우화가 되는 것이다.

20달러를 막 갚으려는 순간 하필 상황이 꼬여 갚을 수 없게 된 래리의 아들 대니는 덩치 큰 아이에게 허구한 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까지 차게 달려 간신이 집 앞에 도착해야만 안전해진다. 래리는 단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주문취소를 안했단 이유로) 매달 원하지도 않는 새 음반을 받아야 하며 돈을 지불하라는 독촉전화를 받는다. 우리 등 뒤로 알 수 없는 거대한 공포가 뒤쫓고 있으며 전화 뒤의 괴상한 목소리는 너무나 부조리한 말을 당연한 듯 해대며 왜 너만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다그친다. 이제 새로운 전화벨이 울리며 영화는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영화가 끝나도 영화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의 삶이 정확하게 이어가기 때문이다.
 
 
▲ 영화 '시리어스 맨'의 한 장면     © 독서신문



<시리어스 맨>에서 무엇을 볼지는 각자의 상황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면 비극은 희극이 된다. 신의 입장에서 유머감각을 가지고 보면 심각할 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이나 해답을 기대했다면 끝도 없는 조롱과 비웃음으로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리는 데 질려버릴지도 모른다. 우연으로 점철된 삶의 불확실성이 꼭 두려움과 공포, 비극으로 귀결돼야 하는 건 아니다.

삶의 의미와 신의 뜻에 대한 코엔 형제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그저 기막힌 유머감각을 즐기면 그만이다. 문득문득 생각날 때마다 킬킬댈 수 있을 것이다. 우화 속의 주인공임을 알고 나면 삶은 한결 가벼워진다. 조롱당할 것인가, 조롱해버릴 것인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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